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 작성자 김형준
- 작성일 2026.07.09(목)
- 조회수 402
고린도후서 3:7-18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849년, 버지니아 출신의 미국 노예 헨리 “박스” 브라운이 “잡화”라고 표시된 나무 상자 안에 몸을 포개고 들어가자, 그의 두 친구가 그를 리치먼드에서 필라델피아로 운반했습니다. 브라운은 숨을 쉴 수 있도록 작은 구멍이 세 개 뚫려 있는 가로 3피트, 세로 2.5피트, 높이 2피트 (약 90X75X60센티미터) 크기의 상자 안에서 26시간 동안 있었습니다. 노예 제도 폐지 운동가들이 그를 상자에서 꺼내자, 브라운은 시편 40편의 말씀으로 된 노래를 부르면서 자유를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소망을 표현했습니다. 브라운은 나중에 이렇게 썼습니다. “만약 당신이 저처럼 자유를 박탈당한 적이 없다면, 자유에 대한 희망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실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유는 진정 제 영혼의 확실하고 견고한 닻이었습니다.”
자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세상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보여주는 중심 가치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영적인 자유로 이끌지만, 거짓된 지혜는 억압으로 이어집니다. 바울은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죄와 죽음, 정죄로부터의 “자유가 있다”(고린도후서 3:17)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귀 기울이고 그분의 길을 따를 때 자유가 따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반대인 경우에는 결코 자유가 따라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분의 초대에 저항할 때 우리는 얽매이고 갇히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변화시키시지만(18절), 죄와 저항은 우리를 덫에 가두어 버립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능성과 즐거움을 제한하고 방해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넓고 풍성한 미래로 인도하시며 진정한 자유로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은 인생의 어느 부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을 자유로 이끄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함을 어떻게 느낄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하나님, 하나님 안에서 변화되어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출처: 한국오늘의양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