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말씀

오늘의 성경말씀

만찬 자리의 아리스토텔레스

  • 작성자 김형준
  • 작성일 2025.08.12(화)
  • 조회수 517

마태복음 26:26-29 “만찬 자리의 아리스토텔레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무도 신의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 일까요? 친구 관계에는 평등이 필요한데, 어느 신이 천상의 지위에서 내려와 낮은 인간과 같아지려 하겠습니까?

만약 아리스토텔레스가 최후의 만찬(마태복음 26:26-35)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그 자리에서 만물의 창조주시며 하늘의 자리를 떠나 낮은 인간이 되신 예수님이(빌립보서 2:6-8; 골로새서 1:16) 그의 제자들에게 이제는 그들을 종이 아닌 친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요한복음15:15).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로마에 우호적인 세리 마태와 로마를 대적하는 열심당원 시몬이 있었고(마태복음 10:3-4), “천둥의 아들들”(마가복음 3:17)이라 불리는 야고보와 요한이 조용한 성격의 빌립과 함께 있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자신의 “몸”과 “피”라고 하시고, 떡을 떼고 잔을 부으며 그것이 “죄 사함”을 위한 것이라고 하셨을 때(마태복음 26:26-28)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어떤 신이 유한한 생명의 인간들, 심지어 곧 자신을 버릴 자들을 위해 죽으려 할까요(56절)?

그것이 성찬이 아주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과 친구가 되셨고, 정치 성향과 기질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친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식탁에서 먹고 마실 때 인간 사이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친구가 되는 새로운 법칙을 쓰신 그 주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밖의 어떤 방법으로 친구 관계의 원리를 다시 쓰고 계십니까? 오늘 어떻게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 다른 관계의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예수님, 저를 하나님의 친구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출처: 한국오늘의양식사)